일본 역사상 최악의 지진 피해를 기록, 1923년 관동지방 일대에 7.9 규모의 강진이 발생합니다. 엄청난 피해 규모죠. 사망자만 약 14만명입니다. 제 1차 세계대전 후 세계는 대공항 상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대지진까지 발생한 상황이죠. 매우 불안정해진 민심으로 관심을 돌려야 하는데, 이때 등장한 한 인물이 있습니다.
당시 일본 내무 대신인 미즈노 렌타로는 조선인에게 악감정이 많아요.
왜냐하면 조선이 던진 폭탄으로 다리를 크게 다쳤기 때문이죠. 그에게 관동대지진은 놓칠 수 없었던 기회죠. 각료 회에서 말하기를 "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
당시 경시청에 근무하던 경찰 관료인 쇼리키 마쓰다로 귀에 들어가고
" 조선인들이 폭도가 되었다는 정보를 입수합니다. 민심을 돌리고자 기자들에게 거짓 정보를 흘리고, 기자들은 이를 믿고 일제히 보도를 합니다. 기자를 본 일본인들이 조선인들을 공격하기 시작하죠.
1923년 9월 10일 매일 신보는
집 날아가고, 재산 날아갔는데, 이 상황에 조선인 폭동 소식까지 전해지자 죄 없는 조선인들에게 분노를 합니다. 일본 고위층의 의도적인 이간질로 수많은 조선인이 잔인하게 학살되었습니다.
관동 대지진으로 시작된 일본의 조선인 대학살, 약 2만 명의 희생자가 발생합니다. 이 상황을 지켜보던 한 사람이 있습니다.
황태자를 제거하자!! 그러던 중 발생한 광동 대지진은 수많은 조선인의 죽음도 모자라 박열 의사와 아내 또한 비밀 결사 조직을 만들었다는 혐의로 구속 기소되었죠.
박열은 일본 황태자 암살 계획을 인정했죠.
첫 번째, 죄인 취급하지 말 것, 두 번째는 재판장과 동등한 좌석 설치할 것, 세 번째는 조선 관복을 입혀줄 것, 네번째는 조선어 사용하게 해줄 것, 나는 일본어를 할 줄 알지만 조선어를 말하겠다!
요구를 받아들인 일본 사법부, 전통 관복을 입고 법정에 출석합니다. 그리고 사형 선고를 합니다. 사형 선고가 내려지자 그가 미소 지으며 한 말은?!
1926년 옥고를 치르던 중, 가네코 후미코는 23살 나이로 사망합니다. 일본인 신분으로 항일운동을 펼친 그녀, 세상을 떠난 지 92년 만에 독립 유공자로 인정을 받습니다.
출처: 어쩌다 어른.








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