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한19, 국민의 위대한 움직임, 역사적그날19, 8번째부터 첫번째까지!!


19번째부터 9번째는 여기♥  에서 확인해주세요.
이제 2000년대 민주화의 봄으로...!!

러시아와 터키 사이에 위치한 조지아...당시엔 그루지아였어요.
1991년 소련의 붕괴로 독립된뒤 혼란 그 자체였음.
시민들의 마음에 불을 지핀 사건이 발생함.

2001년 정부에 비판적인 민영방송을 탄압함. 꺼져가는 민심 앞에 전해진 충격소식
2003년 11월 국회의원 총선거의 부정선거 의혹

새롭게 펼쳐질 국가의 미래에 희망으로 부푼 사람들..
그러나 국민의 기대를 저버린 개표 결과 당시 대통령인 셰바르드나제 집권여당의 압승!
출구조사와 다른 결과에 부정선거의혹을 제기함.
11월 22일 3만여명의 시민들이 정권퇴진, 재선거를 요구.
이때 시민들 손에 쥐어진 것은 장미꽃이었어요.

벼랑 끝에 선 셰바르드나제 대통령은 국가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결국 11월 23일 막을 내린 8년간의 독재정권...!
2004년 11월 국민행동당 당수인 미하일 사카슈빌리가 대통령에 당선됨.
평화의 상징 장미로 이룬 조지아의 장미혁명.
다른 독재 국가의 국민들에게 뜨거운 울림을 준 사건이에요.
이후 중앙아시아에 도미노 혁명이 번졌는데.. 1년뒤 또다른 구소련 국가 우크라이나로 이어진 혁명.


출구조사결과 야당대표 빅토르 유셴코가 11%차로 우세함
그러나 개표결과 여당후보 야누코비치가 당선됨. 출구조사와 전혀 다른결과가 나옴.
이후 항의 시위를 벌인 야당 후보 유셴코 지지자들.


중앙 선거 고나리 위원회는 부정 선거를 인정하며 대통령 선거 무효 판결을 내림
2004년 12월 재선거실시!
시민의 힘으로 치른 재선거 결과 야당대표인 유셴코가 당선됨.
유례없는 새로운 역사를 쓴 우크라이나 시민들...

조지아, 우크라이나의 시민혁명의 영향은 구소련국가인 키르기스스탄에도 뜨겁게 번진 혁명의 물결.
2005년 2회에 걸쳐 진행된 의회총선거

심지어 정치적 입지가 없던 그의 자녀들까지 의회에 진출!
당시 총선거 과정을 감시한 유럽안보협력기구.
투표권매수, 불공정한 보도등 부정선거로 평가됨. 이후 키르기스스탄 시민들의 분노가 폭발했고 시민들의 반정부 시위에 대통령은 러시아로 도피를 함.
2005년 4월 결국 대통령 사임문서에 서명을 함
시민의 힘은 어디에서든 위대한 것 같습니다.
세 국가 시민혁명의 상징은 조지아의 장미, 우크라이나의 오렌지 키르기스스탄 혁명의 상징인 튤립. 혹한을 견딘뒤 봄을 알리는 야생튤립은 키르기스스탄의 봄을 기다리는 시민들의 소망을 담은 것.
국민들의 손으로 꽃피운 위대하고 아름다운 혁명...

살인적인 물가,  높은 실업률, 고통에 빠진 튀니지~
정부가 밝힌 튀니지의 공식 실업률이 14%에 실제 경제 상황은 그보다 더 최악임.
튀니지 경제악화의 주범은

은행경영권 사립 대학 지분을 강탈해 국가를 사업체로 여긴 그.
벤 알리 일가의 재산은 약 8조9천억원으로 추정됨.
국민들의 분노가 극에 치닫는 사건이 발생함.

극심한 경제난 속에서 그를 더 힘들게 한건 사회비리였음.


하지만 경찰이 요구했던 허가서는 뇌물이었음.
심지어 경찰은 부아지지를 구타하고 모든 물건을 압수함.
숨통 조이는 생존권 압박에 모욕감까지 더해지자 울분이 폭발했고 2010년 12월 17일


분신으로밖에 호소할수 없었다는...현실이 너무 안타깝네요.
그런데 청년 부아지지의 분신 이후 추악한 독재정권에 분노해 거리로 나온 튀니지 국민들.


튀니지의 민주화 운동이 더 의미 있는 이유는  청년 부아지지가 분신했던 곳은
인구가 약 4만명의 소도시 시디 부지드인데 튀니지 소도시에서 일어난 일이 전 세계로 알려진 계기가 됨.
청년의 비극이 SNS에 알려진뒤 국민들의 민주화 운동이 확산된 것.
그런데 서양 언론은 튀니지 혁명을 SNS혁명이라고할 정도로 SNS의 힘을 매우 강조했는데
튀니지 국민들은 혁명은 국민들의 힘이라고 SNS는 도구일뿐이라고함.
이후 국민들의 민주화 열망에 겁먹은 독재자 벤 알리! 결국 24년 독재를 물리쳐낸 튀니지 국민들..
재스민 혁명으로 불린 민주화운동!
당시 많은 중동 국가들이 독재에 신음하고 있었는데 독재 정권을 몰락시킨 재스민 혁명이후 이집트, 시리아, 리비아, 에멘등 중동 국가에 민주화열풍이 일어
아랍의 봄의 초석을 다진 재스민 혁명.

튀니지의 시민혁명 바람이 전해진 리비아!
아프리카 최대의 석유 매장량을 자랑하나 반면 높은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으로 서민의 삶은 피폐하죠.

1969년 정권초기에 대통령 직책을 거부하는 파격행보를 함.
공화국 체제에서 민중에 의한 정부라는 뜻의 자마히리야 체제로 전환.

혁명가가 독재자로 변질한거네요.

1980년대 중반 장기간 권력을 잡은뒤변질. 카다피를 거역하면 모조리 숙청함.

리비아내 석유 기업들을 국영화한뒤 사유재산화함
권력의 맛에 취해버린 카다피는 황금관을 쓰고 황금 지팡이를 들고 자신의 부와 권력을 과시한 독재자가 됨.
심지어 파리채 손잡이까지 황금으로 장식했다고함.
리비아 국민이 분노를 분출하게된 계기는

반정부 시위를 계획하다 체포된 인권변호사 페티 타르벨을 위해
2월 15일 시민들이 거리로나서 타르벨 석방운동을 시작함.
무력진압에 부상자가 속출했지만 물러서지 않은 시민들... 다음날 시민들의 굳건한 기세에 정부는 타르벨을 석방함.
그러나 이미 정부에 대한 분노는 최고조임
벵가지를 포함해 5개의 도시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발생.
정부는 시민들을 막기위해 미사일, 화학무기를 동원. 당시 추정 사망자수는 무려 3만여명이었음. 그러나 더욱 활활 타오른 시민들의 자유 열망!
시민들에 의해 수도가 함락당하자 고향 시르테로 도피한 카다피는 10월20일 마을 하수구에  숨어있다가 발각됨. 장장 42년간 군림한 독재자 카다피.


카다피 자신도 상상하지 못했을 처참한 최후.

독재자의 비극적인 최후는 국민들을 배신한 대가였습니다.

1991년~2002년 10여년간의 긴 내전으로 분란을 피해 온 알제리인들은
2019년 3월 알제리 전역에서 국민들이 대규모 시위를 진행.


1956년 프랑스 식민통치에 맞서 무장 독립운동에 참여한 그!
당시 알제리 독립투쟁의 영웅으로 등극 1999년 군부의 지지를 받으며 대통령에 당선됨
하지만 그의 정치적 야욕은 점점 커져만 갔는데..
2008년 대통령직 연임을 한차례로 제한한 헌법 조항을 폐지함.
야욕의 끝인 종신 대통령의 길을 만든 그. 하지만 그가 통치한 20년동안 물가와 실업률은 더 높아지고 경제붕괴까지 오게됨.


꼭두각시 대통령 아니냐고~ 그의 형제와 군부의 대리통치의혹까지...
결국 분노한 국민들은 금요일마다 대규모 집회를 실시
외신에서 평화시위라고 평가하면 많은이들의 지지를 받았다고 핍박을 당하면 평정심을 지키기가 보통일이 아닌데요.
약 50만명 대규모 인원이 모였음에도 물리적 행사를 하지않음.
평화 시위대에게 꽃을 던지며 힘찬 지지를 보낸 국민들..
알제리 역사상 유례없는 대규모 시위였고



결국 국민의 저항에 무릎을 끓은 그!!
국민들의 힘으로 독재를 무너뜨린 두번째 아랍의 봄.!
하지만 독재 타파에도 시국은 여전히 불안한 상황이에요.
부테프리카 대통령은 퇴진했지만

알제리 국민들의 민주화 운동은 현재 진행중입니다.
하루빨리 알제리에 진정한 봄이 찾아오길...

2018년 12월 19일 수도 하르툼과 여러 도시에서 시위를 벌인 사람들.
시민들이 거리에 나선 이유는 빵값때문이에요.

빵값 인상  문제는 생존권과 직결되기 때문이에요. 수단의 주식이 빵인데
가뜩이나 높은 물가로 먹고살기 어려운데 빵값을 3배나 올린다는것은 서민들을 사지로 내모는 일이에요. 일명 빵의 민주주의 운동으로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었던 수단의 민주화운동.


30년간 독재 정치를 한 알바시르 대통령.
대통령 퇴진 시위로 이어진 경제난으로 이에 강압적으로 대응한 독재자 알바시르는
총, 최루가스 무장군인과 경찰을 동원해 시민들을 탄압함. 유혈사태까지 발생하고
진압과정에서 70여명의 사망자와 수백여명의 부상자가 발생.
들불처럼 거세게 번진 민주화 열망의 불꽃!
4개월간의 투쟁끝에 군부의 협조에 힘입어 알바시르 대통령 축출에 성공함.
축출후 알바시르 전 대통령의 집을 압수수색했는데 국민들은 고통받고 굶주림에 시달렸는데..


현금으로만 1500억원이상 추정된다고
그런데 수단의 봄 시위의 중심에 선 백의의 수단여성이 있어요. 전세계에 큰 감동을 안긴 그녀는...

REVOLUTION 혁명!

프랑스 혁명의 상징인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과 너무 닮았죠.


서양 언론에서는 그녀를 수단의 잔 다르크라고  표현하고 수단 국민들은 그녀는 누비아의 여왕이라고함.
수단의 고대왕국인 누비아는

퀸 오브 누비아.
그녀의 정체는 알라살라로 22살의 건축공학도라고해요. 평범한 여대생의 위대한 용기!
경찰의 삼엄한 경비에도 꿋꿋한 그녀!




수단은 여성들에게 할례를 하는 비인격적인 문화가 있어요.
수단은 여아 90%가 할례를 할 정도로 여성인권이 척박함.
그럼에도 용기있게 저항하여 인권 운동의 아이콘으로등극
그녀가 보여준 작지만 큰 울림!!
부디 수단에도 따뜻한 봄이 찾아오길...!
전세계 시민들의 위대한 투쟁을 되짚어본 시간...
진짜..민주화에대한 투쟁은..다른 나라 여러 곳곳에서도 일어나고 있었네요.
민주주의는 결코 최종적 성취는 아니다 그것은 지칠줄 모르는 노력 계속적인 희생
그리고 의지에의 소명이요, 필요하면 그것의 방어를 위해 죽으라는 명령이다. - 존F. 케네디
<출처: tvN 프리한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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