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한19, 405화 한국을 더 사랑한 대한 외국인 19. 19위, 18위 ,17위



200억 원을 포기하고 김구 선생 살린 외국인?!
그들이 일기장을 짓밟은 사연!! 볼수록 흥미진진한 특종 랭킹 쇼. 

우리는 잘 몰랐지만, 한국인만큼이나 한국을 사랑한 외국인들이 있습니다. 그 어떤 고난과 역경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을 위해 헌신하고 목숨 바친 위인들.

한국을 더 사랑한 대한 외국인 19.



19위 임시 정부 자금을 위한 첩보 작전?!

조선 주둔군인 사령고나 암살 작전을 펼치는 의열단의 이야기인 영화 암살. 



극 중 일본인으로 등장하는 기무라.
의열단원과 함께 조선 독립을 돕는 일본인 캐릭터인데?! 일제 강점기 조선의 독립을 위해 목숨 바친 일본인이 있습니다. 



일본인 나카지마가 뜻을 함께 한 곳은 바로 대한광복회였습니다. 

대한광복회는 독립운동을 위한 군자금 확보와 친일 세력 처단 등 무장 투쟁을 전개했습니다. 무장 투쟁을 위한 누기인 권총이 절실했던 상황이죠. 1920년 당시 조선인은 권총 구매가 불가했죠. 

난관에 부딪힌 대한광복회, 그 순간,  조선을 위해 직접 나선 일본인이 나카지마입니다. 



일본인이기 때문에 권총 구입이 가능했고,  일본인이라는 신분을 활용했죠. 경찰서 허가를 받아 나카지마 자신의 이름으로 직접 권총, 실탄을 구입합니다. 

자칫 목숨을 위협받을 수 있는 위험한 일이었지만, 독립군에게 무기인 권총을 제공합니다. 일본인 나카지마의 도움으로 적극적으로 독립 투쟁을 한 대한광복회. 결국 일본 경찰에게 발각됩니다. 



대한광복회원들과 함께 유죄 판결을 받은 나카지마.

조선의 독립투사를 위한 권총 대리 구매는 일본인이어도 위험한 행위죠. 조선 독립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걸고 도운 것. 
1921년 6월 26일 경성 지방 법원 판결문에서 발견된 양심 있는 일본인 나카지마.


17위 000을 뛰어넘은 애국심!!

사진 속 인물들의 정체는?!






한국광복군 소속 부대인 인면전구공작대.
1940년대 인도에서 촬영한 사진입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인도, 미얀마 지역을 점령한 일본군에 대항했고,  연합군은 영국과 공동 작전을 수행했죠.

한국광복군 사진 속에 외국인이 있다?!



바로 롤랜드 클린턴 베이컨 대위입니다. 캐나다 출신인 베이컨 대위는 인도 주재 영국군 소속 장교입니다. 한국을 위해 목숨 바쳐 항일 투쟁을 했습니다. 

군인으로서 세계 평화를 위해 일본에 맞서 싸운 것일까요? 캐나다 출신 베이컨 대위는 원래 군인이 아니었습니다. 민간이었던 그가 타국에서 군인이 되어 한국광복군과 함께 항일 투쟁을 한 사연.

1931년 아내와 함께 한국 땅을 밟은 베이컨.
함경도에 학교를 설립한 뒤 아이들에게 영어를 교육했고, 



10년 간  네 자녀를 낳고 키우며 한국을 제2의 고향으로 여긴 그.

캐나다 출신인 외국인 베이컨,  한국을 떠난 베이컨이 향한 곳은 고국인  캐나다가 아닌 인도입니다. 



" 내 비록 조선을 떠나지만, 일제의 만행을 두고 보지 않으리!!"

당시 인도, 미얀마 접경 지역에서 전쟁 중인 일본군과 인도주재 영국군. 한국 땅에서 산 10년간 일제의 만행을 목격한 베이컨. 그래서 영국군에 자원입대하게 됩니다. 

1943년 베이컨은 인도에 상륙한 한국광복군과 접선을 합니다. 



함께 일본과 싸우자는 그는 한국광복군과 소통하며 공동 작전을 수행합니다. 
일본군 지도와 주요 문서 번역, 일본군 투항을 위한 라디오 방송 등  항일 투쟁을 이어 간 베이컨. 

한국광복군에게 큰 힘이 된 베이컨의 존재.  한국인 동지들과 함께 전장을 누볐던 베이컨 대위. 1945년 3월 만달레이 전투 중 일본군의 포격에 사망하게 됩니다. 
그토록 바란 조선의 광복을 눈앞에 두고 순국하게 되었습니다.  뒤늦게 밝혀진 베이컨 대위의 활약. 



2020년 외국인 독립 유공자로 지정, 건국 훈장 애족장을 추서.

외국인이 독립 유공자로 지정된 것의 의미는  조선 독립 투쟁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는 것이죠.

항일 투쟁중 전사한 故 베이컨 대위,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싸운 그의 정신을 기억하겠습니다. 


16위 본관이 어디세요? 묻던 000

한 대학교수가 누군가를 만나면 늘 하던 첫 질문입니다. 



단순히 이름을 묻는게 아닌 조상의 뿌리까지 물었던 인물, 




요즘 우리나라 사람들끼리도 묻는 사람이 드믄 본관,  외국인이 본관을 묻다니 더욱 의아하네요. 심지어 본관의 개념조차 잘 모르는 한국인도 다수인데  혹시 아시아 역사를 연구하는 교수님이 아니었을까?






동생이 목숨 바친 나라 한국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고,  1954년 한국 땅을 밟은 미국인 존 서머빌은  폐허가 된 땅에서 그는 한국의 미래를 위해 헌신합니다. 
한국인들에게 배움의 장을 마련해주기 위해 대학을 설립하는데  직접 강단에 서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죠.




오랜 세월, 한국 학생들을 가르치며, 한국을 더 사랑하게 된 존 서머빌, 특히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큰 애정을 가지고 있는데  한국인들의 뿌리를 찾아 족보를 연구하고 조선시대 울산 지역의 족보를 분석한 논문을 출판했다고 해요. 



동생은 한국의 자유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했고,  형은 한국의 미래를 위해 인재 양성과 역사 발전에 기여했죠.  우리나라를 위해 헌신한 미국인 형제. 
진심으로 한국을 사랑했기에 가능했던 일인거 같습니다.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했던 미국인 생전 존 서머빌의  미국 자택 문괘에 적힌 이름은 



그의 가슴속에도 영원히 새겨 놓았을 한국 이름이었습니다. 


출처: 프리한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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