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3년 어느 날, 20살 손기정의 인생 목표를 바꿔버린 편지 한 통!!
손기정의 육상계 선배인 권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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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선발전에서 1등을 차지하며 LA 올림픽에 출전한 마라톤 선수가 권태하입니다.
그렇다면 일본의 작전대로 일본인 선수가 우승했을까? 작전에 실패하게 됩니다. 권태하가 일본 측의 뜻을 거스르고 페이스 메이커가 되길 거부했던 것.
결국 작전은 실패로 돌아가고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두게 된 일본 선수단.
부당한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권태하를 부진의 원흉으로 지목한 코치진.
그렇다면 권태하의 편지를 받은 손기정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권태하의 편지를 읽고 가슴속이 뜨겁게 끓어오른 손기정.
1933년 3월 경영마라톤 대회. 10월 조선신궁경기대회 마라톤 1위. 1934년 4월 전조선풀마라톤대회 1위 조선의 마라톤 일인자로서 우뚝 선 손기정.
그렇게 찾아온 손기정이 간절히 기다려온 그날!!
1936년 베를린!
출발 신호와 함게 바람처럼 레인을 달리는 손기정. 그런데 예상과는 다르게 다른 선수들이 너무나 빨랐던 것.
1등으로 골인!!
응원해준 수많은 이를 생각하며 이를 악물고 레이스를 이어 나간 손기정. 그렇게 경기 중반부를 넘어서자 빛을 발하기 시작한 엄청난 연습량.
속도계가 고장 난 폭주 기관차처럼 뜨거운 지면을 내달리는 손기정. 그리고 잠시후 경기장에 울려 퍼지는 10만 관중의 함성.
2시간 29분 19초 2 올림픽 신기록 달성.
수많은 선수들을 제치고 당당히 1위로 결승선을 통과한 손기정. 손기정은 이제 더 이상 무명의 조선인 선수가 아니었습니다. 전 세계인의 올림픽영웅으로 우뚝 선 손기정.
생애 처음 출전한 국제대회의 영광스러운 시상식 순간. 고개를 들어보니 하늘 높이 올라가는 일장기와 경기장에 울려 퍼지는 일본의 국가. 게다가 지금껏 조선인을 멸시하던 일본이 자신을 추켜세우며 칭송하는 모습을 보여주죠.
그토록 꿈꾸던 순간이 찾아왔음에도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던 청년 손기정.
나라를 잃은 비운의 마라토너가 일본을 향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저항이었습니다.
금빛 메달로도 감출수 ㅇ벗었던 굴욕감과 수치심. 남승룡은 손기정의 금메다보다 월계수 화분이 더 부러웠다고 회고하고 있죠. 3위를 한 남승룡에겐 일장기를 화분이 없었던 것.
비참해하던 손기정과 반대로 올림픽 우승 소식에 환호한 일본, 일본은 자신들의 우월성을 세계에 뽐낼 선전물로 손기정의 올림픽 우승을 이용하려 했습니다.
그렇다면 올림픽 영웅 손기정의 귀국 모습은 과연 어땠을까?
바로 손기정이 귀국하기 전 조선에서 벌어진 엄청난 사건 때문입ㄴ다.
바로 시상대 위 손기정의 사진에서 일장기를 지워버리고 보도한 것.
손기정을 중심으로 조선인이 결집될 것을 우려한 일제.
손기정 선수가 사람들과 아에 접초하지 못하도록 환영식 같은 행사도 다 감시하고 통제했던 겁니다.
그런데 일본이 손기정을 요주의 인물로 삼은 것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손기정이 베를린에서 보여준 문제적 행동 때문입니다.
출처 : 벌거벗은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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